작가 한강에 대해 알고 있다면 가장 먼저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설인 '소년이 온다'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작가 한강을 처음 만났기 때문에 앞선 작품들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게 되었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작가의 말에
지독한 사랑을 나눴던 남녀 간 이별에 관한 내용인가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작가 한강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이 책은 제주 4.3사건에 관한 얘기이자 무거운 사랑에 대한 얘기이다.
장편소설이니만큼 이번엔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다.(스포 O)
책의 주인공 경하는 작가이다.
그녀는 K 도시에 관련된 소설을 쓴 후 악몽에 시달리고
그 고통이 한계치까지 다가와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허구한 날 수취인 없는 유서를 쓰고 찢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은선에게 급히 병원으로 와달라는 문자를 받게 된다.
인선은 제주 출신의 사진작가로, 20대의 경하가 잡지사에서 일하며 알게 된 동갑친구이다.
둘은 같이 일을 했지만 어머니를 돌보러 제주도로 내려갔던 인선은 경하에게 수취인으로 떠오르지도 않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어쨌든, 연락을 받고 병원에 찾아간 경하는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해 봉합된 손가락에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인선을 마주한다.
인선이 경하를 부른 이뉴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건 바로, 제주 집에 남겨진 새를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다.(하늘을 나는 '새'가 맞다.)
경하는 그 즉시 인선을 마주했던 서울 병원에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도착한 제주도는 심한 폭설로 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는 상황이었다.
제주 중간 산 마을에 위치한 인선의 집을 과거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중, 어둠이 내렸고
경하는 길을 헤매다가 넘어져 정신을 잃기도 했지만,
인선이 부탁한 새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겨우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 부탁했던 아마라는 새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렇게 인선의 부탁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폭설로 인해 전기도 난방도 되지 않는 인선 집에서 기절하듯이 자는데
갑자기 죽은 새들이 다시 나타나고, 손가락이 멀쩡한 인선이 경하를 부르며 나타난다.
(여기부터 내용들은 경하가 꿈을 꾼 것인지, 환상을 본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게 인선의 집에서 마주한 경하와 인선은
제주 4.3사건을 13살의 나이로 보냈던 정심(인선의 엄마)의 이야기를 나눈다.
총 맞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입에 넣었던 기억,
수많은 시체들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닦아가며 자신의 엄마, 아빠를 확인했던 기억 등
자신의 딸(인선)에게 전하지 않았던 정심의 이야기는 정말 처절한 비극이었다.
어린 시절 인선은 엄마 정심을, 아픈 기억을 지닌 제주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 정심은 인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선은 스스로 제주 4.3사건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직접 마주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맞섰다.
결국 소설은,
경하가 인선의 집에서 한숨 자고 일어난 시점부터
인선의 입으로, 정심의 입으로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끝이 난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길 바랐던 작가의 말을 이해하기에
제주 4.3사건은 너무 잔인했고 무참했다.
특히 이 부분.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책을 통해, 인선을 통해, 정심의 기억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낀 제주 4.3사건이었지만
현실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했을 거라는 것을 안다.
소설 속 경하처럼 집필하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힘든 과정이었음을 이해하기에
이런 사건을 소설 배경으로 선택한 작가 한강에게 존경을 표한다.
매우 주관적인 별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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